보통사람 (Ordinary People)

 

멜론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703353

 

보통사람 - 로우패스인더스트리 (LowpassIndustry)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

www.melon.com

플로 https://www.music-flo.com/detail/album/edzlnzany/albumtrack

 

FLO | 지금 당신의 음악, 플로

음악을 들을수록 나를 더 닮아가는 나만의 FLO. 지금, 당신의 음악

www.music-flo.com

벅스 https://music.bugs.co.kr/artist/20143185

 

로우패스인더스트리

벅스에서 로우패스인더스트리의 멋진 곡을 감상해보세요.

music.bugs.co.kr

애플뮤직 https://music.apple.com/kr/album/ordinary-people-single/1584313503

 

로우패스인더스트리의 보통사람 - Single

앨범 · 2021년 · 1곡

music.apple.com



EDM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품어낸

로우패스 인더스트리의 ‘보통사람’

 

이 음악은 데뷔 이후부터 한국 헤비 사운드에 흥미로운 단초를 꾸준하게 제공해 나왔던 윤두병(기타)과 이창현(드럼), 강한(보컬), 이승현(베이스)의 프로젝트 밴드 로우패스 인더스트리(Lowpass Industry)의 첫 싱글 ‘보통사람’이다. 스래쉬메탈을 기조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표방하는 로우패스 인더스트리는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헤비 사운드의 기나 긴 호흡을 부여잡는 가운데 새로운 정점을 향하려는 의미와 취지를 담으며 출발했다. 음향에서 적용되는 ‘Lowpass’는 저역대를 통과시키는 필터로 로우패스 필터를 적용할 경우 저역 주파수의 대역이 재생되고 고음역은 감쇠하게 된다. 밴드 로우패스 인더스트리는 중저역대의 사운드와 리듬이 강조된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로우패스 필터의 정교함을 차용해서 밴드명을 구상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을 지향하던 이창현과 윤두병이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에 곰감대를 형성하면서 로우패스 인더스트리의 근간은 마련될 수 있었다. 로우패스 인더스트리는 2015년 김경민(보컬), 이승현, 이창현, 윤두병의 라인업으로 STOG라는 밴드명으로 출발했다. 한국 헤비 신을 상징하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자이기도 한 윤두병은 한국 헤비메탈의 주요 축을 담당했던 밴드 크래쉬(Crash)와 나티(Naty)에서 탁월한 결과를 내놓았었고, 독자적인 활동을 위해 결성했던 차퍼스(The Choppers)를 통해 확장된 사운드와 음악성을 표출한 바 있다. 특히 미디엄 템포의 그루브감 가득했던 차퍼스의 음악은 나티와 크래쉬에서 파생되어 유연함이 더해진 작품들로 평단과 마니아들에게 호평을 얻어냈었다. 신디사이저와 루프 사운드에 정평이 나있는 뮤지션 중 한 명인 이창현은 중3 때부터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해서 1990년 제로지(Zero G)의 1집 [Exciting Game]으로 앨범 데뷔했다. 이후 다운타운(Down Town)과 레처(Lecher) 등 굵직한 명성을 남긴 밴드를 거쳐 나왔다. 여기에 시나위 출신의 강한과 여러 밴드와 세션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승현이 함께 하는 로우패스 인터스트리는 멤버 각자의 역량을 더하며 밀집된 에너지를 가열해 나왔다.

 

로우패스 인더스트리의 첫 싱글 ‘보통사람’은 이창현과 윤두병의 조합에 이승현의 안배된 베이스와 강한의 매끄러운 멜로디를 바탕으로 사운드의 질감과 톤이 완성되었다. 로우패스 인더스트리의 음악적 특징은 한국 헤비메탈이 지녔던 강렬함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NIN)와 자도닉(Zardonic), 그리고 크리스털 메써드(Crystal Method)와 필터(Filter) 등의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이들의 첫 싱글 ‘보통사람’은 이를 잘 증명한다.

EDM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장점을 교묘하게 접합해서 발표된 ‘보통사람’은 일렉트로 하우스와 하드코어 테크노 등을 축으로 다양하게 확장해낸 진보적인 헤비 사운드로 요약된다. 또한 기계적이고 차가운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는 ‘보통사람’은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에너지와 메시지를 뒤섞은 가사 역시 돋보인다. 또한 필터링된 각각의 악기와 루프 음으로 채워진 사운드에 강한의 블루지한 보컬 라인이 더해지며 어그레시브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로우패스 인더스트리는 ‘보통사람’ 이후 지속적으로 디지털 싱글을 내놓으며 밴드의 확장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고종석(대중음악평론가)




Credits

보통사람 (Ordinary People)

 

Lyrics by LOWPASS INDUSTRY

Composed by LOWPASS INDUSTRY

Arranged by LOWPASS INDUSTRY

Vocal 강한

Guitar 윤두병

Bass 이승현

Drums 이창현

Programming 이창현

Recorded by 이창현 @ STUDIO 319 

Mixed & Mastered by 강한,이창현 @ LUKE STUDIO

MV director 송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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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의도 소야곡

2 날개

3 Show Me The Money

4 기다려

5 비명

6 The Chopper Way

7 친구

8 추락하는

9 Guitar Paradise

10 건배


1 CRASHDAY

2 RUINATION EFFECT

3 MISGUIDED CRIMINALS

4 REVOLVER

5 COLD BLOODED

6 REDLAMBS

7 CREEPING I AM

8 ATHEIST

9 LUCID SYCOPHANT

10 THE NEW BLACK

11 FIERCE PEOPLE




 01. Intro... 
 02. CUTTER 
 03.다 가져가
 04. 착각 
 05. Chance Of Once 
 06. 빈자리 
 07. Get Stone 
 08. 길 
 09. 잊었어 
 10. Bang 
 11. 벌거숭이 
 12.밤차-유승엽 작사, 작곡
 13.불놀이야-홍서범 작사, 작곡

 

Release Date 2006-05-02
No. EKLD0713

이 앨범은 2006년 발매한 나티의 1집 long time no see 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한국 트래쉬메틀계의 전설이라 불리울만한 밴드 네임이지요.
사실 80년대 초부터 결성되어 활동하던 형님들로써 제가 참여하여 1집을 발매하게 된걸 지금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80년말 저도 형들의 공연을 보고 많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었지요. 당시 멤머는 정형섭(기타,보컬) 남지우(리드기타),허준석(베이스),김태수(드럼) 이렇게 라인업 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크래쉬의 바로 직속 선배님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티 형들 위로는 아발란쉬 형님들이 계셨구요.
거의 코흘리개 찌질이 수준이였던 저는 (당시 19세 정도..ㅎㅎ) 외국 유수의 멋진 밴드들을 AFKN 에서 보아왔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헤비메틀 공연을 본다는것이 실로 메가톤급 충격으로 다가왔었고, 여차저차해서 이차삼차 해서 형들을 본받아 안흥찬 씨와 크래쉬를 결성하게 됩니다.

에니웨이.... 나티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디젤,멍키헤드,등으로 분산되어 다시 좋은 명반들을 만들었고, 05년쯤 준석형과 태수형 그리고 김상수(현재 나티보컬,기타) 형이 의기투합 하게 됩니다. 
당시 저는 홍대인근에서 헤비메틀 전문 BAR 를 운영하며 탱자탱자 삶을 유유자적 낭비하고 있던차에 형들이 접선을 해옵니다. "두병아 너 모하냐 이대로 술집주인장으로 썩어 문드러질것이냐"
머 대충 이런 뉘앙스 였습니다.
바 에서 맨날 파리와 모기만 잡던 저는 형들의 꼬심에 휙 넘어가 새로운 나티의 멤버로 합류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에는 그때처럼 음악,창작,연주,삶에 대하여 멤버들과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며 의기투합했던적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을 만큼 저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경험과 시간이었습니다.
멤버 모두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와 각자 먹고살기위한 일들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4일 이상,매일5시간씩 1년 이상을 함께 작업과 연습에 몰두 하였고, 그결과 1집을 발매하게 되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와서 다시한번 음악을 들어보며 생각하면 많이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보입니다.
늘 어떤 작업을 끝내게 되면 늘상 있는 일이지요.
각자의 음악적 특징들을 극대화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런 개성들을 어지간히 융합하는데는 결과적으로 좋은 출발을 보여줄수 있지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1집 활동의 즐거운 기억을 뒤로하고 저는 다시 크래쉬에 합류하게 되고, 나티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1년 나티의 2집이 새로 발매 되었습니다.
2집의 나티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인 노병기 님을 맞이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메탈 메니아들의 많은 성원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1집시절 "다가져가" 라이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앨범의 시작은 "스트레인저","미스테리" 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신 "김동규" 형님이

음악감독을 맡아 자연스레 후배들에게 새끼(?)쳐서 만들어낸 ost 입니다.

참여 하신 분들은 "이시영,송창덕,윤두병,김태수,윤효간" 이렇게 프로젝트 밴드로

크레딧에 올라갔죠.

나름 이 ost 에서는 이시영님의 "It is the end" 가 아주 좋은 반응이 있었던듯.

잔잔한 곡인데 시영형님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죠.



제가 작업한곡은 첫번째곡 영화제목과 같은 타이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입니다.

이영화는 류승완 감독님의 데뷔작으로 알고있는데요.

당시에 류승완님이나 류승범님은 완전 무명이었죠. 요즘처럼 이렇게 잘 나가실줄은

전혀 몰랐지만, 당시에 가편집된 사운드가 전혀없는 필름을 보고 깜놀~

류승범 뿐만 아니라 몇몇등장인물들의 소름돋는 멋진 연기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의뢰받은 부분은 당구장에서 등장인물들이 패싸움하는 장면이었는데

당시에는 VHS 비됴테잎이라 말그대로 테잎 늘어질때까지 보고 또보고 음악과 싱크맞춰보고

완전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했던것 같아요. 처음해봐서 어리숙하기도 했구.

감독님이 원하시는 스타일은 초스피드 and 헤비함 이였죠. 뭐 그런부분에서는 당시에 제가

특화(?) 되어있으니 절 섭외하셨겠지만.ㅎㅎㅎ

아무튼 A.S.L 멤버인 김태수 형님의 멋진 드러밍과 함께 곡의 완성도 보다는 장면에 맞추어질

삽입곡 의 역할로써 임무를 다한것 같습니다.

영화도 대박나서 작게나마 참여한게 참 뿌듯하더라구요.

지면을 빌어 이시영,김동규,송창덕 형님들께 참여시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꼭 하고싶네요.

끝으로 부클릿 맨뒷면에 이런글이 있습니다.10년전이나 지금이나 외치고 싶군요.

"꽃 같은세상 날려버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6년경 크래쉬를 떠나고 저는 다시 시작점인 인천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사두" 라는 또다른스타일의 스래쉬밴드가 인천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기거하며

다양한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음악과 기타연주에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또다른 방식으로 음악생활을 하던중 .

평소 관심이 많았던 tattoo 에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되었는데, 왜냐하면

타투를 하고싶어하는 뮤지션들이 주위에 너무많았는데 모두들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몰랐죠. (96~7년경에는 지금처럼 타투에 관대한 시절이아님)

저는 91년부터 타투를 가지고있어서, 모두 저에게 상담을 했었답니다 -.-

때마침 인터넷전용선이 유행할때라 외국의 타투에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해

줄수있게되었는데 , 이게 파고들다보니 저도 모르게 어느세 기타를 놓고 타투머쉰을

들고있는 제자신을 발견하게되었습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포트폴리오 첫장중에서)

이렇게 몇년이 흐르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고 매일매일 타투작업만 하게되었죠.

늘어나는 작업량에 기타는 어느세 케이스에 숨어버리고, 그렇게 타투이스트로서

자리매김을 하는가 싶었는데 , 어느날 문득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다시 기타를 꺼내들고 밴드를 조직했습니다.  Automatic S.L. (우리의 음악으로

너의 귓속을 자동살균 치료해주겠다!! ....라는 밴드명. 오토메틱스틸라이저.ㅎㅎ)

드럼 김태수, 베이스 한수연, 보컬 김종명, 기타 윤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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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명,태수,수연,두병 순.(유일한사진)

타투얘기는 왜 했냐하면 , 이밴드가 조직된 배경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낮에는 일을좀 줄여서 타투작업 밤에는 밴드작업 .투좝~을했었죠.

그래서 그런지 많은 활동은 못했고요.  유일하게 흔적을 남긴것이 , 이 로커딕

앨범인데, 좀 문제가.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처음 의뢰받았을때, 원곡느낌을 살리는

편곡이 아닌 전혀 다른 곡을써달라는것으로 오해.  

다른팀들과 너무 이질감이생겨버리는곡이 탄생하게되었답니다.

01. 은하철도 999 by Woodoo Madoo (3.22)
02. 캔디(Wild Wild 캔디) by Damage Inc. (3.49)
03. 로보트 태권 V by Toybox (3.20)
04. 뽀뽀뽀 by 펄럭펄럭 (3.35)
05. 개구리 왕눈이 by Sad Legend (6.33)
06. 그랜다이저 by Mr. Soul (3.54)
07. 신데렐라 by Every Single Day (3.37)
08. 미래소년코난(코난 감상기) by Automatic S.L. (4.04)
09. 아기공룡 둘리 by Mr.Funky (3.44)
10. 요술공주 밍키 by Blue Balls(2.49)
11. 우산 by 아무밴드 (4.29)
12. 텔레비전 by Mr. Soul (3.10)
13. 푸른잔디 by Naked (4.56)
14. 오빠생각 by 허벅지 (6.19)

곡은 마음에들지는 않지만 ,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는군요 :)


어쨋든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획이였고 나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이앨범이 작은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automatic s.l 은 오래가지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타투일이 감당하지못할정도

로 커져버려서 밴드일은 훗날을 기약해야했지요. (밴드의 정체성찾기도 사실상 실패)

보너스로 크래쉬 드러머 정용욱 당시 스파이더맨 작업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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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앨범이 먼저 나오고 크래쉬2집이 나왔을겁니다. 이걸먼저 포스팅했어야했는데

바뀐듯하네요. 같은년도라..쩝.

아무튼 같은년도니까 그냥 넘어가죠 : )


당시 태지보이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난알아요,하여가,그담에 교실이데아 맞나요?

컴백홈이 먼저인가(ㅎㅎtag용 ) .  연이은 메가힛트에 한국가요계가 들썩들썩 할때입니다.

교실이데아 정규앨범 작업시에 태지씨는 소문안나게 작업하는걸 원했던건지 크래쉬 멤버들

조차 보컬Ahnn이 녹음하고 온걸 몰랐죠. 한참뒤에야알았습니다.

지금 다시 들어봐도 교실이데아 라는곡은 스타일과 가사가 상당히 세련된 휼륭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컬Ahnn의 강력한 목소리로 교실이데아가 말하고있는 주제를 함축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해보겠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새삼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히트의 연속가도를 달리고 있는중에 그는 대규모 공연을 기획하게 됩니다.

무려 7일간 논스톱으로 잠실체조경기장(기억이가물가물합니다.) 에서의 콘서트였죠.

그넓은 경기장이 7일동안 꽉꽉 차더군요 :O

기획단계에서 저희쪽으로 교실이데아의 라이브버전 편곡의뢰와 함께 공연을 같이

해주기를 정중하게 문의해왔습니다.

단순한 구성으로 리프가조합된 곡은 잘못건드렸다간 되려 안하니만 못하는경우가 많아서

멤버들과 신중하게 고민하였습니다.라이브라면 크래쉬 장비투입도 만만치않은 문제였고

말이죠.


우선은 태지씨와 미팅을 통해 결정하기로 하고 그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당시 그의 집은 신촌지역 근방이었는데 집 지하실에 멋진 스튜디오가 있더군요.(정말 부러웠음)

게다가 집거실과 아래 작업실 이동이 간이엘리베이터!! (오옷 부러워서 졌따ㅜ.ㅜ)


라이브편곡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 의견이 조율되었습니다.

한가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것은 라이브편곡된 교실이데아는 공연시 MR(반주는틀고 노래는

라이브로) 로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리얼라이브만을 고집하는 우리였기에

음악인이 어떻게 테잎틀고 할수있는가 말도안되는처사! 라고 힘주어 말을했다

고하면 거짓말이고 (웃음) , 태지씨도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가요. 우리에게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일단 이번 공연은 공연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공연으로 인한 비디오,cd,테잎,방송

등의 부가적인 수입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공연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컴퓨터로 제어되는 첨단 조명장치들과 , 각종 스페셜이펙터 장치들.

그리고 제일중요한 사람이 하는 "안무" .  이것들이 우리가 연주해야할 곡과 100 %

싱크가 맞아야하는것이었죠.  특히 춤추는분들에게 일정한"템포"라는것은 대단히 중요한것인데요

사실 락공연에서 템포는 공연장 분위기에 따라 빨라지기도 혹은 느려지기도 하는것은

아무리 베테랑 밴드라고 해도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고 볼수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또한 rock concert 의 매력이기도 하죠. 일부러 템포변화를 주기도

하니까요. rock will never die~lml

하여간 우리는 앰프,드럼,마이크 셋팅하고 준비~시작~헤드벵~끝. <---요런 스탠다드한
 
라이브만 수백회 해봤지 , 이렇게 여러가지가 복합된 공연은 처음이고 , 또 태지씨의 조리있는

설득에 우리는 좋은경험이 될것같아 모든걸 수긍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적지않은 pay 때문

이라고 말하고싶진않군요 ㅡ,.ㅡ)


결론적으로 교실이데아 곡 자체를 크게 건드리지않고 앞뒤로 또다른 스타일의 리프들을

덧붙여 좀더 스케일이 크게변모하게되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태지씨 녹음실에서 녹음을

어렵게어렵게 진행했던기억이 나는군요. 야식으로 감자탕 거하게 먹은게 기억나는데

식사후 태지씨가 담배를 맛있게 태우시길래(근데 이런거써도되나? 죄송해요 태지씨.ㅎㅎ)

어 담배도 태우시네요? 물어보니 자기는 맛있게 식사했을때만 태운다고..... (정말일까?)

또다른 에피소드는 태지씨팬들에게 테러당할것같아 요것만.(ㅎㄷㄷ)


녹음이 끝나고 바로 실전처럼 연습이 몇일 이어졌습니다.

안무와 같이 맞춰야하기때문에 현석,주노씨도 함께 연습을 하였구요.

제가 춤이랑은 전혀 친하지가 않기때문에 잘은모르지만서도 현석,주노씨의

열정은 태지씨와는 또다른 느낌의 그 무엇이 있더군요.(역시 프로들)

그렇게 굉장히 즐거웠고,빨랐고,정신없었던 그런 시간이 지나고

장장 7일간의 공연은 큰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게되었습니다.

서로 뮤지션으로써 존중이 바탕에 깔린 작업은 늘 상쾌하며 기분좋은 작업이됩니다.

그러나 백밴드개념의 작업이었다면 저희는 어떠한 이유에도 작업에 응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였는지, 중간이였는지 확실하지않지만

모든 양쪽멤버들과 마장동 (도살장근처) 에가서 한우 등골(생으로),(그 비싸다는) 먹은게

기억납니다 (처음먹어봤으므로).  당시 우리는 대다수 20대초반이라 이런류의(아저씨스따일)

음식과는 친하지않았는데(하얀엿꼬아놓은듯이생긴)먹으면 왠지 배아플것같아 망설였으나

태지씨 메니저분이 말씀하시길


"이거먹으면 매일아침 텐트친다"


이 한마디에 냅다 접시를 비웠습니다.

몸에좋다면 뭐든안가리고 먹는 나는 진정한 대한민국 남아! ㅎㅎ

cont~










 









 







그렇게 당시 국내메틀씬의 상황에 견주어보면 데뷔앨범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대다수분들이 평을 해주셨습니다. 

발매후 수많은 공연을 하게되었는데, 앨범발매전과후에 어떤점이 틀려졌냐면,

호프집같은데서 공연을 안해도 되는 (기쁜건지 아쉬운지 모를묘함)  것과,

열정적인 fan 분들이 많이 생겨났다는것이죠.  아마 지금 crashzon 의 클럽회장님도

이맘때쯤부터 인연을 맺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늘 클럽을 이끌어주시는점

마음속깊이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특히 대구,대전,광주의 크래쉬 팬들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유독 지방에 가면 거친남성

팬들에게 유독 제가 지지를 많이 받은것 같아요. 왜그런지는 모르겠음.ㅎㅎ

제이름이 두병이라 콜라pt 병 두개를 들고 응원해주시는분, 헬멧쓰고 헤드벵잉하시는분,

다이빙하셨던분들 . 모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시나요.

이글을 보신다면 공연장을 다시한번찾아주세요. 마음속에 숨어있는 작은불씨를

제가 멋진 공연으로 활활 타오르게 해드리겠습니다. lml



각종공연들과 행사로 바쁘게 보내면서도 틈틈히 2집을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습니다.

총12곡이 들어있는 2집은 1집과는 다르게 셀프 프로듀싱에 엔지니어만 섭외를 하였습니다.

데쓰메탈이 강세인 미국 플로리다 탐파에 있는 모리사운드스튜디오의 Judd Packer 씨를

섭외 , 본토에서 작업해온 노하우를 직접느껴보았습니다.

1집의 콜린도 그랬고 2집의 judd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뮤지션이 하는일과

본인들이 하는일의 확실한 구분을 짓고 일을 한다는점입니다.

judd는 항상 음색의 값을 조정할때나 어떤섹션의 변화를 줄때는 미리 뮤지션에게 의견을

물어보며 행동에 옮기는 자기일에 충실한 엔지니어스타일 이었습니다.

덕분에 밴드의도대로는 많이 가까와져갔으나, 그 밴드의도라는것이 밴드자체에서

합의점을 돌출해내었을때의 의도라면 좋은의미이겠습니다만, 당시 밴드는 녹음중

에도 많은불화가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서 제가 듣기에는 그런점들이 고스란히

앨범사운드에 녹아있는것같아 사운드적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있는 앨범입니다.



많은분들의 질문중에 제일많은것이 왜 2집이후에 탈퇴를 하였는가?  라는 질문이죠.

식상한 답변이지만 "음악적 견해차이" 가 정말 답변입니다. 진짜로.ㅎㅎ

정말인가 아닌가는 이앨범 이후의 음악을들어보시면 아시겠죠.

그리고 제가 재가입후 나올 이번6집을 들어보시면 또 아실거구요 : )

물론 저혼자 음악을 만드는것은 아닙니다만 저희가 추구하는 스래쉬 메틀에서의

음악색은 기타리스트가 어떤방향을 컨셉으로 하느냐에 따라 많이 바뀌게됩니다.

뭐 이제는 제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니까요. 옛일은 그저 옛일.


그리고 이맘때쯤 우리 노래하는분이 어디선가 "피가모질라~" 를 크게외친다는것이

누군가의 앨범에 녹음이되었는데 이게 이슈가될지 누가알았겠습니까?

악마의 목소리가 어쩌구저쩌구.. 아마 뉴스에도 나왔던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가 20년가까이 옆에서 지켜본바로는 "악마"는 아니던데요.

소리잘내는 멋진 헤비락커일뿐입니다 : )


아무튼 2집발매후에도 바쁜나날들을 보내게되었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또다른 인생이 앞에 떡하니 버티고있는것도 모른채 저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듭니다(당시에는 삐삐시절)

" 나 이제 그만할래 "

인천 어느이름모를 10월의 골목길에서 작별을 고했습니다.

왠지 소설같군요.ㅎㅎㅎ

c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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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일은 늦으리 앨범이 발매가 되고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환경보전 슈퍼콘서트를

하게됩니다.  이공연은 당시 비디오 판매도 되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7만5천명(확실하지는않으나 여태 그렇게 알고있음) 이 운집했는데요.

그도그럴것이 당시 최고 가수,그룹들이 총출동한 대규모 공연이었으니까요.

이때아마 생전처음 AR(립싱크죠) 로 연주를해야한다고 해서 엄청 황당했었습니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드럼 기타연주 모두 액션만 취하는 그런.....ㅠ.ㅠ

한마디로 공연이 아닌 방송용 show 인거죠.   어린 저희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그래서 비디오를 보면 최후의 날에 마지막에 비웃는 웃음소리가 나오는데

보컬이 립싱크가 잘 맞지않는 부분도 나옵니다.  어쩔수 없었죠. 크래쉬 최초의

AR이였으니 말이죠.

참고로 당시 라이브세션에는 디젤 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하셨던 "장민" 씨가

저와 함께 크래쉬 기타를 맡아주셨었습니다.



내일은 늦으리 얘기가 길어졌네요. 1집예기를 하려했는데 왜 자꾸 샛길로 빠지는지 모르겠습니다.

sk의 메탈포스와 계약된것도 실로 대단한것이었지만 1집발매 까지 적지않은 투자를 결정

한것또한 크래쉬에게는 운이 좋았습니다. 

좋은스튜디오, 훌륭한 외국프로듀서, 앨범속지 사진도 유명한 작가님(안상진for jam 으로기억)께

촬영을 하게되었고 그렇게 이슈가 되다보니 많은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또한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성함을 나열하기는 어려우나 자리를 빌어 감사의말씀 드립니다.


레코딩 얘기를 해볼까요?

1집전에 레코딩경력이라면 연습실에서  tascam 4트랙 테잎레코더(당시 이것가지고 있으면 쵝오

뮤지션 ㅋㅋ) 로 얼렁뚱땅 데모 녹음한것과 내일은늦으리 녹음해본것이 다였죠.

영국에서 온 경력많은 프로듀서인 콜린리차드슨 이 보기에 얼마나 어리고 귀여운 밴드로

보았을지 지금생각해보면 웃음이 납니다.  그때는 저희도 "우린 뮤지션이고 콜린은 우리가 고용한

프로듀서" 뭐 당돌하게(?) 이런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웃음)

그렇게 녹음은 시작되었습니다.   멤버는 3명. 

모든 파트가 실로 중요하지만 헤비메틀. 그것도 스래쉬 메틀에서의 기타가 가지는 비중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여태 둘이 기타를 치다가 한명은 군대를 가는바람에 혼자 레코딩을

해야했습니다.  제나이 20 언저리.  sk라는 큰회사. 유명프로듀서, 각종메스컴의관심,

멤버2명의 나를향한 신뢰감. 거의 OTL 수준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명프로듀서는 괜히 유명한게 아닌가봅니다.

똑같은 리프를 4번을 연주해야했는데 오차를 최대한 줄여야했습니다.

그렇게 할수있었던것은 콜린의 한마디한마디 가 큰힘이었습니다.

"브라보,굿,엑설런트" 등등의 말이였죠. 잘하면 브라보,잘못해도 브라보.ㅎㅎ

칭찬의 힘은 역시나 대단합니다.

그외 사운드 메이킹이야 두말할것도 없죠.  현재의 제가 추구하고있는 사운드와는

큰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이때가 좋은 밑거름이 된것같습니다.
 

1집은 크래쉬가 처음결성된 송설라이브클럽 시절부터 녹음시점까지, 4명 (이영호포함)

젊은이들의 열정의 산물이지요. 다소 설익은 사과같은 앨범이지만(웃음).

크래쉬 최초의 첫자작곡 self destruct. 이곡을들으면 우선 구성이니 뭐니 그런건 둘째치고

당시 우리들의 막가파식의 열정.20살. 헤비니스를 꿈꾸는 그런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에 갇힌 표범한마리가 날뛰는것 같은 그런 음악같아요. 당연히 애착이크죠.

penalty . 이곡은 통기타로 딩기리리~~ 하다 나온리프로 만들었고.

smoke on the water 는 당시 제가 워낙 리치블랙모어에 빠져있던때라 매일 사운드체킹

할때마다 리프치던것이 리메이킹이 되어버렸네요.

앨범에 발표는 하지않았지만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 도 멋지게 리메이크 한것이

있었는데 이곡은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라이브를 했었답니다.

누군가가 mymy 테잎레코더로 녹음한것을 가지고 있다고하는데 다시 들어보고 싶습니다.(웃음)


얼마전 어느포탈사이트에서 한국 100대음반에 이 앨범이 속한것을보고 감개가 무량 하였습니다.

모두다 메탈불모지 한국에서  음악할수있게(버틸수있게!) 물심양면 응원해주시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접대성멘트ㅡ.,ㅡ) ㅎㅎ

워낙졸필이라 글이 두서가 없습니다만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제대로 글을써본적이 없는 (앞으로 노력은 할겁니다 ㅋ) 대한민국 헤비메틀 기타리스트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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