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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메이킹은 스카이hd 최유록pd님. (바쁜데 조낸 고맙다)

곧 다가올 앨범발매를 앞두고 자켓공모전아이디어회의중 티저영상 제작건이

안건으로 나오게되었는데 준비된영상이 너무없어 불가능해보였으나,

살짝연출된 화면과 어거지끼워넣기의 낚시장면. 그리고 불가능은 없는

최유록 베가스마이더스의 폭풍작업간지로 완성되었다.

유투브로걸어보니 화질,음질 저하율200%로구나 ㅠ.ㅠ

음악은 이번6집에실릴 "루네이션 이펙트" 라는곡 엔딩부분.

공모전관련 자세한 사항은 www.crashzon.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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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경 크래쉬를 떠나고 저는 다시 시작점인 인천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사두" 라는 또다른스타일의 스래쉬밴드가 인천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기거하며

다양한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음악과 기타연주에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또다른 방식으로 음악생활을 하던중 .

평소 관심이 많았던 tattoo 에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게되었는데, 왜냐하면

타투를 하고싶어하는 뮤지션들이 주위에 너무많았는데 모두들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몰랐죠. (96~7년경에는 지금처럼 타투에 관대한 시절이아님)

저는 91년부터 타투를 가지고있어서, 모두 저에게 상담을 했었답니다 -.-

때마침 인터넷전용선이 유행할때라 외국의 타투에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해

줄수있게되었는데 , 이게 파고들다보니 저도 모르게 어느세 기타를 놓고 타투머쉰을

들고있는 제자신을 발견하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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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포트폴리오 첫장중에서)

이렇게 몇년이 흐르고 보니 점점 일이 커지고 매일매일 타투작업만 하게되었죠.

늘어나는 작업량에 기타는 어느세 케이스에 숨어버리고, 그렇게 타투이스트로서

자리매김을 하는가 싶었는데 , 어느날 문득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인가?" 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다시 기타를 꺼내들고 밴드를 조직했습니다.  Automatic S.L. (우리의 음악으로

너의 귓속을 자동살균 치료해주겠다!! ....라는 밴드명. 오토메틱스틸라이저.ㅎㅎ)

드럼 김태수, 베이스 한수연, 보컬 김종명, 기타 윤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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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명,태수,수연,두병 순.(유일한사진)

타투얘기는 왜 했냐하면 , 이밴드가 조직된 배경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낮에는 일을좀 줄여서 타투작업 밤에는 밴드작업 .투좝~을했었죠.

그래서 그런지 많은 활동은 못했고요.  유일하게 흔적을 남긴것이 , 이 로커딕

앨범인데, 좀 문제가.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처음 의뢰받았을때, 원곡느낌을 살리는

편곡이 아닌 전혀 다른 곡을써달라는것으로 오해.  

다른팀들과 너무 이질감이생겨버리는곡이 탄생하게되었답니다.

01. 은하철도 999 by Woodoo Madoo (3.22)
02. 캔디(Wild Wild 캔디) by Damage Inc. (3.49)
03. 로보트 태권 V by Toybox (3.20)
04. 뽀뽀뽀 by 펄럭펄럭 (3.35)
05. 개구리 왕눈이 by Sad Legend (6.33)
06. 그랜다이저 by Mr. Soul (3.54)
07. 신데렐라 by Every Single Day (3.37)
08. 미래소년코난(코난 감상기) by Automatic S.L. (4.04)
09. 아기공룡 둘리 by Mr.Funky (3.44)
10. 요술공주 밍키 by Blue Balls(2.49)
11. 우산 by 아무밴드 (4.29)
12. 텔레비전 by Mr. Soul (3.10)
13. 푸른잔디 by Naked (4.56)
14. 오빠생각 by 허벅지 (6.19)

곡은 마음에들지는 않지만 ,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되는군요 :)


어쨋든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획이였고 나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이앨범이 작은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automatic s.l 은 오래가지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타투일이 감당하지못할정도

로 커져버려서 밴드일은 훗날을 기약해야했지요. (밴드의 정체성찾기도 사실상 실패)

보너스로 크래쉬 드러머 정용욱 당시 스파이더맨 작업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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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앨범이 먼저 나오고 크래쉬2집이 나왔을겁니다. 이걸먼저 포스팅했어야했는데

바뀐듯하네요. 같은년도라..쩝.

아무튼 같은년도니까 그냥 넘어가죠 : )


당시 태지보이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죠. 난알아요,하여가,그담에 교실이데아 맞나요?

컴백홈이 먼저인가(ㅎㅎtag용 ) .  연이은 메가힛트에 한국가요계가 들썩들썩 할때입니다.

교실이데아 정규앨범 작업시에 태지씨는 소문안나게 작업하는걸 원했던건지 크래쉬 멤버들

조차 보컬Ahnn이 녹음하고 온걸 몰랐죠. 한참뒤에야알았습니다.

지금 다시 들어봐도 교실이데아 라는곡은 스타일과 가사가 상당히 세련된 휼륭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컬Ahnn의 강력한 목소리로 교실이데아가 말하고있는 주제를 함축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해보겠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새삼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히트의 연속가도를 달리고 있는중에 그는 대규모 공연을 기획하게 됩니다.

무려 7일간 논스톱으로 잠실체조경기장(기억이가물가물합니다.) 에서의 콘서트였죠.

그넓은 경기장이 7일동안 꽉꽉 차더군요 :O

기획단계에서 저희쪽으로 교실이데아의 라이브버전 편곡의뢰와 함께 공연을 같이

해주기를 정중하게 문의해왔습니다.

단순한 구성으로 리프가조합된 곡은 잘못건드렸다간 되려 안하니만 못하는경우가 많아서

멤버들과 신중하게 고민하였습니다.라이브라면 크래쉬 장비투입도 만만치않은 문제였고

말이죠.


우선은 태지씨와 미팅을 통해 결정하기로 하고 그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당시 그의 집은 신촌지역 근방이었는데 집 지하실에 멋진 스튜디오가 있더군요.(정말 부러웠음)

게다가 집거실과 아래 작업실 이동이 간이엘리베이터!! (오옷 부러워서 졌따ㅜ.ㅜ)


라이브편곡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서로 의견이 조율되었습니다.

한가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것은 라이브편곡된 교실이데아는 공연시 MR(반주는틀고 노래는

라이브로) 로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리얼라이브만을 고집하는 우리였기에

음악인이 어떻게 테잎틀고 할수있는가 말도안되는처사! 라고 힘주어 말을했다

고하면 거짓말이고 (웃음) , 태지씨도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가요. 우리에게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일단 이번 공연은 공연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공연으로 인한 비디오,cd,테잎,방송

등의 부가적인 수입을 위한 철저히 계산된 공연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컴퓨터로 제어되는 첨단 조명장치들과 , 각종 스페셜이펙터 장치들.

그리고 제일중요한 사람이 하는 "안무" .  이것들이 우리가 연주해야할 곡과 100 %

싱크가 맞아야하는것이었죠.  특히 춤추는분들에게 일정한"템포"라는것은 대단히 중요한것인데요

사실 락공연에서 템포는 공연장 분위기에 따라 빨라지기도 혹은 느려지기도 하는것은

아무리 베테랑 밴드라고 해도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고 볼수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또한 rock concert 의 매력이기도 하죠. 일부러 템포변화를 주기도

하니까요. rock will never die~lml

하여간 우리는 앰프,드럼,마이크 셋팅하고 준비~시작~헤드벵~끝. <---요런 스탠다드한
 
라이브만 수백회 해봤지 , 이렇게 여러가지가 복합된 공연은 처음이고 , 또 태지씨의 조리있는

설득에 우리는 좋은경험이 될것같아 모든걸 수긍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적지않은 pay 때문

이라고 말하고싶진않군요 ㅡ,.ㅡ)


결론적으로 교실이데아 곡 자체를 크게 건드리지않고 앞뒤로 또다른 스타일의 리프들을

덧붙여 좀더 스케일이 크게변모하게되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태지씨 녹음실에서 녹음을

어렵게어렵게 진행했던기억이 나는군요. 야식으로 감자탕 거하게 먹은게 기억나는데

식사후 태지씨가 담배를 맛있게 태우시길래(근데 이런거써도되나? 죄송해요 태지씨.ㅎㅎ)

어 담배도 태우시네요? 물어보니 자기는 맛있게 식사했을때만 태운다고..... (정말일까?)

또다른 에피소드는 태지씨팬들에게 테러당할것같아 요것만.(ㅎㄷㄷ)


녹음이 끝나고 바로 실전처럼 연습이 몇일 이어졌습니다.

안무와 같이 맞춰야하기때문에 현석,주노씨도 함께 연습을 하였구요.

제가 춤이랑은 전혀 친하지가 않기때문에 잘은모르지만서도 현석,주노씨의

열정은 태지씨와는 또다른 느낌의 그 무엇이 있더군요.(역시 프로들)

그렇게 굉장히 즐거웠고,빨랐고,정신없었던 그런 시간이 지나고

장장 7일간의 공연은 큰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게되었습니다.

서로 뮤지션으로써 존중이 바탕에 깔린 작업은 늘 상쾌하며 기분좋은 작업이됩니다.

그러나 백밴드개념의 작업이었다면 저희는 어떠한 이유에도 작업에 응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였는지, 중간이였는지 확실하지않지만

모든 양쪽멤버들과 마장동 (도살장근처) 에가서 한우 등골(생으로),(그 비싸다는) 먹은게

기억납니다 (처음먹어봤으므로).  당시 우리는 대다수 20대초반이라 이런류의(아저씨스따일)

음식과는 친하지않았는데(하얀엿꼬아놓은듯이생긴)먹으면 왠지 배아플것같아 망설였으나

태지씨 메니저분이 말씀하시길


"이거먹으면 매일아침 텐트친다"


이 한마디에 냅다 접시를 비웠습니다.

몸에좋다면 뭐든안가리고 먹는 나는 진정한 대한민국 남아! ㅎㅎ

cont~










 









 







그렇게 당시 국내메틀씬의 상황에 견주어보면 데뷔앨범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대다수분들이 평을 해주셨습니다. 

발매후 수많은 공연을 하게되었는데, 앨범발매전과후에 어떤점이 틀려졌냐면,

호프집같은데서 공연을 안해도 되는 (기쁜건지 아쉬운지 모를묘함)  것과,

열정적인 fan 분들이 많이 생겨났다는것이죠.  아마 지금 crashzon 의 클럽회장님도

이맘때쯤부터 인연을 맺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늘 클럽을 이끌어주시는점

마음속깊이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특히 대구,대전,광주의 크래쉬 팬들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유독 지방에 가면 거친남성

팬들에게 유독 제가 지지를 많이 받은것 같아요. 왜그런지는 모르겠음.ㅎㅎ

제이름이 두병이라 콜라pt 병 두개를 들고 응원해주시는분, 헬멧쓰고 헤드벵잉하시는분,

다이빙하셨던분들 . 모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시나요.

이글을 보신다면 공연장을 다시한번찾아주세요. 마음속에 숨어있는 작은불씨를

제가 멋진 공연으로 활활 타오르게 해드리겠습니다. lml



각종공연들과 행사로 바쁘게 보내면서도 틈틈히 2집을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습니다.

총12곡이 들어있는 2집은 1집과는 다르게 셀프 프로듀싱에 엔지니어만 섭외를 하였습니다.

데쓰메탈이 강세인 미국 플로리다 탐파에 있는 모리사운드스튜디오의 Judd Packer 씨를

섭외 , 본토에서 작업해온 노하우를 직접느껴보았습니다.

1집의 콜린도 그랬고 2집의 judd도 마찬가지로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뮤지션이 하는일과

본인들이 하는일의 확실한 구분을 짓고 일을 한다는점입니다.

judd는 항상 음색의 값을 조정할때나 어떤섹션의 변화를 줄때는 미리 뮤지션에게 의견을

물어보며 행동에 옮기는 자기일에 충실한 엔지니어스타일 이었습니다.

덕분에 밴드의도대로는 많이 가까와져갔으나, 그 밴드의도라는것이 밴드자체에서

합의점을 돌출해내었을때의 의도라면 좋은의미이겠습니다만, 당시 밴드는 녹음중

에도 많은불화가 있었습니다 ㅜ.ㅜ  그래서 제가 듣기에는 그런점들이 고스란히

앨범사운드에 녹아있는것같아 사운드적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묻어있는 앨범입니다.



많은분들의 질문중에 제일많은것이 왜 2집이후에 탈퇴를 하였는가?  라는 질문이죠.

식상한 답변이지만 "음악적 견해차이" 가 정말 답변입니다. 진짜로.ㅎㅎ

정말인가 아닌가는 이앨범 이후의 음악을들어보시면 아시겠죠.

그리고 제가 재가입후 나올 이번6집을 들어보시면 또 아실거구요 : )

물론 저혼자 음악을 만드는것은 아닙니다만 저희가 추구하는 스래쉬 메틀에서의

음악색은 기타리스트가 어떤방향을 컨셉으로 하느냐에 따라 많이 바뀌게됩니다.

뭐 이제는 제가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니까요. 옛일은 그저 옛일.


그리고 이맘때쯤 우리 노래하는분이 어디선가 "피가모질라~" 를 크게외친다는것이

누군가의 앨범에 녹음이되었는데 이게 이슈가될지 누가알았겠습니까?

악마의 목소리가 어쩌구저쩌구.. 아마 뉴스에도 나왔던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가 20년가까이 옆에서 지켜본바로는 "악마"는 아니던데요.

소리잘내는 멋진 헤비락커일뿐입니다 : )


아무튼 2집발매후에도 바쁜나날들을 보내게되었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않지만 또다른 인생이 앞에 떡하니 버티고있는것도 모른채 저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듭니다(당시에는 삐삐시절)

" 나 이제 그만할래 "

인천 어느이름모를 10월의 골목길에서 작별을 고했습니다.

왠지 소설같군요.ㅎㅎㅎ

c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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